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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Myeong-dong)     2012/12/28

서울의 대표적 상업지구로 도·소매업과 금융업 등 서비스 산업의 밀집지역이다. 저동 1가·충무로 1·2가·명동 1·2가·남산동1·2가·3가·예장동 등 법정동 9개 동으로 구성되었다. 면적은 0.99㎢ 이며, 인구는 2,8016명(2008)이다. 문화재로는 명동성당(사적 258)이 있다.


남대문시장 (Namdaemun Market)     2012/12/28

각종 의류를 비롯하여 섬유제품·주방용품·가전제품·민예품·토산품·농수산물·각종 식품·일용잡화 및 수입상품 등을 취급하고 있으며, 그 중 주요품목은 상권이 전국에 퍼져 있는 의류이다. 특히 각종 숙녀의류가 가장 많이 취급되는데, 고객은 국내 소매상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아메리카는 물론 유럽에까지 퍼져 있다. 또한 아동복은 전국 아동복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각 점포는 소규모이지만 각각 상품을 직접 생산·판매하는 독립적인 기업체로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되는 유통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통비용만큼 가격이 저렴하며, 또한 도매와 소매를 겸비하고 있기 때문에 전국에서 모이는 중간도매상 및 소매상뿐만 아니라 일반 이용객도 이용할 수 있다.


동대문시장 (Dongdaemun Market)     2012/12/28

쇼핑 명소로 유명한 동대문시장은 패션의 최첨단 기지로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원래 동대문시장은 미곡상, 어물상, 청과물상 등이 주를 이루어 1905년에 90여 개의 점포로 시작된 광장시장이 그 출발이 되었다. 6·25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전쟁 이후 주로 월남 피난민의 생활 터전이 되었으며 생활 수품과 군용물자, 외래품이 거래되면서 다시 시장으로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광장시장을 시작으로 창신동 문구거리까지 약 1.3㎞에 걸쳐 청계천로 좌우로 형성된 시장 전체를 동대문시장이라 부르는데 건물 약 30여 동에 3만여 개의 점포가 있다. 평화시장, 동대문종합시장, 신평화시장 등이 전통적인 도매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식당들도 이곳 구석 구석에 숨어 있다. 옛 동대문운동장 쪽의 아트플라자, 디자이너클럽, 우노꼬레 등은 현대적인 상권을 형성한 곳으로 이른 저녁부터 새벽까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도·소매 의류 상인들로 불야성을 이룬다.

밀리오레, 두타 등의 대형 쇼핑몰은 10대와 20대 등 젊은층에게 사랑받는 쇼핑 공간으로 쇼핑몰마다 야외공연장을 마련하여 가수초청공연, 비보이쇼, 댄스경연 등 다양한 이벤트를 열고 있으며 외국인들의 야간 투어 코스로도 이름난 곳이다.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정서를 엿볼 수 있는 시장은 여행자에게 늘 신선한 자극이 되고 삶의 활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준다.


청계천 (Cheonggyecheon)     2012/12/28

길이 10.84km, 유역면적 59.83㎢이다. 북악산·인왕산·남산 등으로 둘러싸인 서울 분지의 모든 물이 여기에 모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왕십리 밖 살곶이다리[箭串橋] 근처에서 중랑천(中浪川)과 합쳐 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한강으로 빠진다. 본래의 명칭은 '개천(開川)'이었다.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 청계천은 자연하천 그대로여서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물난리를 일으켰고, 평시에는 오수가 괴어 매우 불결하였는데, 제3대 태종이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벌여 처음으로 치수사업을 시작하였다. 그후 영조 때에는 준설·양안석축(兩岸石築)·유로변경 등 본격적인 개천사업을 시행하였다. 이 공사로서 내의 흐름이 비로소 직선화하였다.

순조·고종 때에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는데 이 개천에 놓인 다리는 수표교(水標橋)·오간수교(五間水橋)·광교(廣橋)·영미교(永尾橋)·관수교(觀水橋) 등 모두 24개가 있었다. 국권피탈 후 일제강점기 초(이때에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에는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이루어졌다.

8·15광복 후에도 청계천의 유지관리에 힘써 왔고, 1958년 6월부터 복개공사에 착수, 1960년 4월에 1단계로 광교∼주교(舟橋) 1∼4가 간을 완공하여 너비 50m의 간선도로를 만들었다. 1967년~1976년 청계고가도로를 건설, 상류에서 성동구사근동까지 5.4km 구간은 복개되었으나 중랑천 합류 지점까지의 2.4km 구간은 복개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청계천 주변의 복개도로와 고가도로의 안전문제가 제기되자, 1994년~1999년의 5년에 걸쳐 남산 1호 터널에서부터 청계천4가에 이르는 길이 2,030m의 상판과 다리기둥, 들보를 보수하였다. 2002년 청계천4가에서 성동구 마장동 사이에 이르는 길이 3,834m의 상판을 교체하는 보수를 마쳤다.

http://www.cheonggyeche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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